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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강, 2005/06/14 15:10, Game]
지금은 워낙 다양한 종류의 RPG가 나와 있고, '역할 수행 놀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장르 크로스오버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에, 'RPG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내리기란 참 난감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RPG라는 장르의 기원이 TRPG(Table talk Role Playing Game)에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여러 사람이 탁자에 빙 둘러 앉아, 각자 종이 한 장에 글로 설명된 자신의 가상 '분신(캐릭터)'을 가지고 노는 것이 RPG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TRPG를 즐기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DM(Dungeon Master)이었다.

DM은 간단히 말해 '신'이며, 모든 질서의 관장자이다. 유저들이 캐릭터를 만드는 것, 그 캐릭터로 할 수 있는 일 등은 모두 약속된 '규칙'의 제약을 받게 되는데(룰이 없으면 게임이 성립될 수가 없으니까), 이 때 이 규칙을 만들고, 유저들의 플레이를 규칙에 따라 통제하는 존재가 바로 DM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DM을 맡는 사람은 D&D든 GURPS든 그 게임의 근본이 되는 규칙들에 통달해 있어야 했으며, 그 외에도 시나리오 창작의 소양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그만큼 재미있는)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여야 했다.

간단히 말해 아무나 DM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은 RPG의 세계에 새로운 DM을 불러왔으니... 그가 바로 '컴퓨터'였다.

TRPG에서는 캐릭터의 이동, 전투 등등 모든 것이 '말'로써 이루어 졌으며, DM은 온갖 상황에서 주사위를 굴려대며 행위들의 가부(可不)를 결정했다. 그만큼 복잡하고 긴 시간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이것을 처리한다면? 정해진 룰에 따라 주사위 굴림을 난수 발생 함수로 처리해 버리고 결과값만 떡하니 내놓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이처럼 환상적인 능력을 가진 DM의 등장은 곧 CRPG(Computer Role Playing Game)의 시대를 열었으며, 지금은 'RPG'라고 하면 곧 CRPG를 지칭할만큼 보편화 되었다.

...

...

... 그럼 이제 TRPG는 시대에 뒤쳐진 구닥다리일까?

... 그럴 리가 있나.

아무리 CRPG에서 컴퓨터가 룰에 따라 엄밀하게 모든 것을 처리한다 할지라도, 컴퓨터는 컴퓨터일 뿐 명백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길게 말해 무엇하랴. 예전에 TRPG 커뮤니티에서 봤던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모든 설명을 대신할까 한다.

(그 내용이 완벽하게 기억나지는 않기 때문에, 조금은 각색을 해서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었다.)



"이건 말도 안돼! 사기야! 사기라구!"

... 파티원들의 침튀기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 녀석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우리가 무슨 레어에 쳐들어간 것도 아니고, 필드를 이동하는 도중에 갑자기 레드 드래곤을 만난다는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하지만 그 녀석... DM은 마치 먼산이라도 바라보듯 시선을 돌린 채 대꾸했다.

"뭘 그리 놀라고 그래? 겨우 해츨링일 뿐이라고."

"에인션트든 해츨링이든! 겨우 레벨7, 8밖에 안되는 파티가 무슨 수로 저걸 상대하라는 거야?"

위자드를 플레이하고 있는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너... 너 솔직히 말해. 지난번에 술내기에서 진걸 가지고 복수하는거지?"

DM 녀석... 움찔하는게 눈에 다 보인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대답했다.

"흠흠! 자 어쩔 수 없잖아? 드래곤은 나타났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

...

... 어떻게 되었느냐고? 당신 뭘 기대하는거야. 전멸하는게 당연하잖아.

파이터인 나는 한방에 나가 떨어졌고, 내 옆의 클레릭 녀석은 지금 드래곤(해츨링?)의 입에서 잘근잘근 씹히고 있다.

남은 것은 저 7레벨 위자드 하나...

"어이 너 스펠은 몇 개나 남아있는 거야?"

"... 메모라이즈한거 거의 다 썼어. 이제 하나 남았는데..."

뭐 몇 개가 남아있든 무슨 소용이겠는가. 애초에 상대가 안되는 것을.

DM 녀석은 미소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말했다.

"자, 레드 드래곤은 물고 있던 클레릭의 시체를 내뱉고, 위자드를 바라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어. (웃기시네. 드래곤이 웃는걸 우리가 알아본다고?) 그리고 이제 마지막 일격을 위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위자드를 향해 쏜살같이 내리꽂기 시작했어!"

...

...

... 그 때. 위자드 녀석의 눈에 빛이 번쩍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클레릭과 내가 일찌감치 포기하고, 새로운 캐릭터 시트를 주섬주섬 챙기려 하고 있을 때, 위자드 녀석의 마지막 캐스팅이 우리들의 고개를 번쩍 들게 했다.

"헤이스트(이동 속도 증가 마법)!!!"

... 헤이스트? 이동 속도를 늘려서 도망치려고? ...그게 아니었다.

...

...

...

...

...

... 어떻게 되었느냐고? 위자드 녀석은 급강하하는 드래곤에게 헤이스트를 걸어버렸던 거야.

덕분에 드래곤은 황당하게도... '추락사'를 해버렸지.

무려 7레벨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어 -_-




물론 드래곤이 저 정도로 추락사할 리는 없을 것도 같지만... -_-

이런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바로 TRPG의 '재미'이며,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TRPG를 즐기게끔 하는 원동력이다.

CRPG가 아무리 발달한다 할지라도, TRPG의 이런 고유 영역은 넘볼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황당한 진화가 CRPG에서 이루어질지라도, TRPG는 끝까지 살아남을 듯 싶다.

살아남더라도 그걸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CRPG가 워낙 넓게 퍼져서 다들 잊고 있는 듯 한데... RPG라는건 원래가 '매니악'하고 '마이너'한 장르였다.

매니아가 마이너로서 가지게 되는 생명력은 미약할 지언정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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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Hol | 2005/06/14 15: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충분히 저렇게 될 수도 있겠군요.
드래곤에게 마법이 잘 먹힐지는 의문이지만요. -ㅅ-
글강 | 2005/06/14 15: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헤이스트는 원래 '버프 마법'이기 때문에 내성 굴림이 없죠... 저항이라는게 뜨지 않고 100%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DGDragon | 2005/06/14 18:4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버프나 힐이나... 받는 쪽에서 저항 여부를 결정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츨링이라는 개념이 드래건의 연령대로 어느 정도인진 몰라도 어덜트 이내라면 3rd 기준으로 볼 때 주사위 빨로 SR를 뚫을 가능성도 있겠죠. 근데 뚫어도 낙하 대미지가 즉사에 달할만큼 나오던가? 레드면 HP가 이삼백은 될텐데 -_-
글강 | 2005/06/14 18: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뭐 저도 다른데서 봤던걸 옮겨온거니 정말 저렇게 잡은건지 어떤건지는 모르죠 -.-
... 예상컨데 DM이 걍 지지친게 아닐까 싶은...;
DGDragon | 2005/06/14 20: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BF2의 드라이버 좀 올려주세요. -_-
글강 | 2005/06/14 22: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잉? 길드 ftp에 올려놨는데?
seaotp | 2005/06/16 18: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하하 ** 여기엿군요?~~~~~~~~~~~
글강 | 2005/06/16 19: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하하 ** 여기입니다~~~~~~~~~~~ (네?)
벤시라 | 2005/06/17 02: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랜만에 맛보는 추억을...
이젠 기억속에 묻어둔....TRPG....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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