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강, 2008/11/15 01:53, Life]
자기 고백. 혹은 자학. 내지는 근황.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매너리즘, 매너리즘... 말은 참 쉽게 하지만, 나는 이게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를 예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다.
매너리즘의 가장 무서운 부분은, 자기 자신이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은 절대(?)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동안... 나는 심지어 만족스러웠고 행복했다.
나는 자신감에 충만했으며,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고 있는 듯 싶었으며, 내 동료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오만한 발상이었는지, 이 얼마나 얄팍한 식견이었는지, 이 얼마나 무관심한 태도였는지.
그리고 그 미몽에서 벗어난 지금은... 한심하게 헐벗은 내가 보인다.
나는 오만했다.
나는 업무를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
나는 동료에게 무관심했다.
그렇게 내 오만함과 착각과 무관심의 매너리즘이 깨어진 지금...
그러나 자기 자신이 매너리즘에 침잠해 있었음을 깨닫는 것과, 이를 극복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나는 매너리즘을 극복했다... 라고 선언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아마도 나의 이러한 노력들은 새로운, 하지만 조금은 더 넓은 우물 속으로의 침잠을 부여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다음 번 또 다시 우물 밖으로 뛰쳐나와야 하는 때가... 조금은 더 빨리 와주길 기대할 뿐.
그리고 그 때엔 그 탈출이 조금 덜 아프길 기대할 뿐이다.
그렇게 요즘은... 열심히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고 있다.
아니, 소를 잃고서 이제야 겨우 새로이 외양간을 짓고 있다.
이제사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훗날 어느 소를 위해서든 내 안에 외양간 한 채는 제대로 지어놓겠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열심히 지어보려 하고 있다.
심지어 그 노력이 더욱 즐겁다는 새로운 경험이 반갑기까지 하다.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은...
나는 내 삶에서 한 조각의 미소와 한 방울의 눈물을 영원히 잃어버린 듯 싶다.
그것이 내가 이 우물을 벗어나려 바둥거리며 지불하는 대가이다.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매너리즘, 매너리즘... 말은 참 쉽게 하지만, 나는 이게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를 예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다.
매너리즘의 가장 무서운 부분은, 자기 자신이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은 절대(?)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동안... 나는 심지어 만족스러웠고 행복했다.
나는 자신감에 충만했으며,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고 있는 듯 싶었으며, 내 동료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오만한 발상이었는지, 이 얼마나 얄팍한 식견이었는지, 이 얼마나 무관심한 태도였는지.
그리고 그 미몽에서 벗어난 지금은... 한심하게 헐벗은 내가 보인다.
나는 오만했다.
게임 개발 바닥에 들어온지 이제 60개월. 5년의 경력.
나는 이제 내가 뭘 좀 안다고 생각했다. 아니 심지어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근거없는 자신감이 나를 휘어감싸고, 내 눈에는 오만함의 장막이 덮어씌워졌다.
그 장막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세상을 너무나도 쉽게 가늠하고, 쉽게 판단하며, 쉽게 결론을 내려 행동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신감에 충만했다.
이러한 사고의 원활한 흐름이 내 오만함을 더욱 부추기고, 장막은 점점 더 불투명해져만 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장막을 걷어내고 바라 본 세상은... 우물 안.
나는 우물 안에서조차 또 한 겹의 장막으로 나를 에워 싼 개구리일 뿐이었다.
나는 이제 내가 뭘 좀 안다고 생각했다. 아니 심지어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근거없는 자신감이 나를 휘어감싸고, 내 눈에는 오만함의 장막이 덮어씌워졌다.
그 장막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세상을 너무나도 쉽게 가늠하고, 쉽게 판단하며, 쉽게 결론을 내려 행동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신감에 충만했다.
이러한 사고의 원활한 흐름이 내 오만함을 더욱 부추기고, 장막은 점점 더 불투명해져만 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장막을 걷어내고 바라 본 세상은... 우물 안.
나는 우물 안에서조차 또 한 겹의 장막으로 나를 에워 싼 개구리일 뿐이었다.
나는 업무를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는거지 뭐'라는 얄팍한 생각을... 대체 언제부터일까. 그렇게 일해왔다.
당연히 퍼포먼스는 절반, 혹은 이하. 그러나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만족하고 있었다. 나는 일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열의를 가지지는 않지만, 일을 싫어하지도 않는 어설픈 미적지근함이 내 원숙함의 발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오만함의 장막 위에 얄팍한 착각의 장막을 덧대었다.
장막을 걷어내고 바라 본 업무는... 전쟁터.
치열함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었으매, 나는 그것을 단지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 외면을 원숙함으로 착각, 아니 오만하게 판단했다.
당연히 퍼포먼스는 절반, 혹은 이하. 그러나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만족하고 있었다. 나는 일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열의를 가지지는 않지만, 일을 싫어하지도 않는 어설픈 미적지근함이 내 원숙함의 발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오만함의 장막 위에 얄팍한 착각의 장막을 덧대었다.
장막을 걷어내고 바라 본 업무는... 전쟁터.
치열함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었으매, 나는 그것을 단지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 외면을 원숙함으로 착각, 아니 오만하게 판단했다.
나는 동료에게 무관심했다.
오만함과 착각이 내 눈을 덮으며... 동료는 그저 같이 일하는 사람. 일 이외에는 소통의 창구가 없는 사람. 그냥 남. 서로 자기의 일을 하며 업무적으로만 조율을 하는 사람. 결정적으로...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잘 일하는 사람... 으로만 생각했다.
동료라는 허울좋은 단어가 공허할만치... 그저 무관심했다.
심지어 그 동료가 없으면 내가 무너진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내 잘난 맛에, 내 자존심에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만 있었다.
오만함으로, 착각으로 점철된 내 장벽에... 이렇게 무관심의 장벽이 더해졌다.
그리하여 내 무관심 속에서 한 명의 동료는 눈에 보이게 무너져 갔으며, 또 한 명은 내 눈 밖에서 보이지 않게 무너져 갔다.
아니 그 무너짐에 내가 책임을 느낀다는 얄팍한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무관심했다. 이것이 내가 짊어진 죄이다.
그리고 결국 내 매너리즘의 장벽을 깨어 준 것은 바로 그 동료였다.
동료라는 허울좋은 단어가 공허할만치... 그저 무관심했다.
심지어 그 동료가 없으면 내가 무너진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내 잘난 맛에, 내 자존심에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만 있었다.
오만함으로, 착각으로 점철된 내 장벽에... 이렇게 무관심의 장벽이 더해졌다.
그리하여 내 무관심 속에서 한 명의 동료는 눈에 보이게 무너져 갔으며, 또 한 명은 내 눈 밖에서 보이지 않게 무너져 갔다.
아니 그 무너짐에 내가 책임을 느낀다는 얄팍한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무관심했다. 이것이 내가 짊어진 죄이다.
그리고 결국 내 매너리즘의 장벽을 깨어 준 것은 바로 그 동료였다.
그렇게 내 오만함과 착각과 무관심의 매너리즘이 깨어진 지금...
그러나 자기 자신이 매너리즘에 침잠해 있었음을 깨닫는 것과, 이를 극복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나는 조금 더 겸손하게... 아니, 보다 조심스러워지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조금 더 옛날의 열정으로... 아니, 업무의 치열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게으름을 걷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조금 더 사람에게 살갑게... 아니, 동료에게 내가 기울여야 하는 관심이 무엇인지를 배워가고 있다.
나는 조금 더 옛날의 열정으로... 아니, 업무의 치열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게으름을 걷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조금 더 사람에게 살갑게... 아니, 동료에게 내가 기울여야 하는 관심이 무엇인지를 배워가고 있다.
나는 매너리즘을 극복했다... 라고 선언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아마도 나의 이러한 노력들은 새로운, 하지만 조금은 더 넓은 우물 속으로의 침잠을 부여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다음 번 또 다시 우물 밖으로 뛰쳐나와야 하는 때가... 조금은 더 빨리 와주길 기대할 뿐.
그리고 그 때엔 그 탈출이 조금 덜 아프길 기대할 뿐이다.
그렇게 요즘은... 열심히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고 있다.
아니, 소를 잃고서 이제야 겨우 새로이 외양간을 짓고 있다.
이제사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훗날 어느 소를 위해서든 내 안에 외양간 한 채는 제대로 지어놓겠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열심히 지어보려 하고 있다.
심지어 그 노력이 더욱 즐겁다는 새로운 경험이 반갑기까지 하다.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은...
나는 내 삶에서 한 조각의 미소와 한 방울의 눈물을 영원히 잃어버린 듯 싶다.
그것이 내가 이 우물을 벗어나려 바둥거리며 지불하는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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