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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강, 2005/12/05 23:49, Life]
하루 종일 '새로운 글 작성' 버튼을 눌렀다, 취소했다, 눌렀다, 취소했다... 3번을 그 짓을 한 후에야 겨우 끄적거려 본다.

지금까지 올려온 잡문 중에서 시작이 이렇게 어려운 글이 있었던가. 난감하기까지 하다.




수능 점수가 그저 그랬던 내가 어찌어찌 4년제 대학에 턱걸이하는 기적(?)을 성취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논술''면접'의 공이 아니었을까 싶다.

논술이야... 뭐 글빨 세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느 정도 자신있는 분야이니 그렇다 치고, 면접의 경우에 특히 교수님께 나름의 임팩트를 선사했었다고 생각한다.

시커먼 고딩 한마리가 면접이랍시고 교수 연구실에 와서는 '사이버 공산주의를 공부하고 싶습니다'라는 시덥잖은 소리를 해대고 있었으니...;;; 그래도 교수님의 얼굴색이 변하면서 '그거 흥미있는데? 사이버 소셜리즘? 아니면 사이버 맑시즘을 말하는건가?'라는 반문을 하시고, 화기애매한 만담(?)을 늘어놓고 나왔다. 흐음... 임팩트가 꽤 강하지 않았을까? 뭐 아니면 말고. 아무튼 난 입학했다. 사회학과였다.

헌데 '사이버 공산주의'라...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의 내가 도대체 무엇을 '사이버 공산주의'라 지칭했던 건지조차 애매하다. 대충 기억하기로는 '가상 세계의 재화는 정보라 할 수 있으며, 그 정보의 공동 생산, 공동 소유를 통해 생산력 증대와 정보의 지속적인 질적 업그레이드를 꾀할 수 있다...' 뭐 대충 이런 생각이었던 듯 싶은데 -_-;;;

뭐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저런 얄팍한 논리는 제껴두고,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던 '가상 사회'에 대한 내 꿈은 그 뒤로 이어지는 정치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이었다. 바로 '가상 사회를 매개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고등학교 때 한창 PC통신이라는 것에 빠져 살았다. 나는 천리안 출신이다. 그리고 천리안의 토론방에서 온갖 시사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장미빛 꿈을 꾸었던 기억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PC통신망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이런 논의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행정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 아닐까!'

... 흐음 사실 만만찮게 얄팍하긴 하지만, 요즘도 '인터넷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낯간지러운 소리가 심심찮게 들리는 것을 보니, 사람 생각이라는게 다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아무튼 그 때 나는 저렇게 생각했고, 네트에 큰 기대를 걸었으며, 실제로 몇년의 시간이 지나 인터넷망이 좍 깔리면서 온갖 사회 이슈들이 인터넷을 통해 쟁점화되는 것을 보고 흡족해했다.

오마이뉴스의 부상, 한 때 내가 몸담았던 안티조선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일, 네트를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진 수많은 정치 행동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고무시켰다.

'내가 꿈꾸던 세상이 정말 오는 것인가?'

물론 순기능만 있을 수는 없다. 소위 '악플'로 대표되는 온갖 역기능들이 대두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넷심'이 갈수록 성숙해져 가고, 언젠가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꿈을 접었다.



황우석 교수의 일에 대해 사람들이 보이는 '광기'는 사실 별반 대단한 일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이전에 수많은 '인터넷 인민재판'에서 보아왔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절망하는 부분은, '아무도 그들을 선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증오를 생산하고, 관계된 모든 것에 비수를 꽂았다'는 점이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나는 황교수의 잘못을 큰 죄악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이 황교수에게 큰 오점으로 남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황교수 스스로가 사죄했으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연구는? 당연히 계속 진행하면 된다. 누가 그걸 방해하려 들었는가? 아무도 그런 사람은 없다.

아울러 PD수첩이 한 보도 역시 '사실 관계의 폭로'라는 점에서 당연한 언론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라 가볍게 생각한다. 지금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PD수첩의 그 방송을 정말 보기는 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게 오버하지도 않았고, 별반 악의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물론 난자 제공 문제 이외에, '우리가 연구 자체를 검증하겠다'라고 나선건 솔직히 좀 오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이 '검증자'의 역할을 맡겠다고 나서는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라 할 수 없다.)

아주 간단한 에피소드이다. 언론은 폭로하고, 대상자는 사죄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거기서 가볍게 끝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국익'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허위 개념에 기대어 오로지 증오와 맹목만으로 가득찬 이들이 네트를 뒤덮었다.

그리고 그 광기의 불꽃은 전국을 뒤덮으며 일어나... 관계된 모든 것을 태우고, 모든 것에 상처를 입혔다. 맙소사.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가?

이전의 다른 사안들과는 달리 이번 일은 그 관계자 모두가 '보편적 가치를 심히 훼손하는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특정 세력이 네티즌들을 선동하지도 않았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가?

설마... 그들 스스로가 그 안에 그만큼의 맹목과 증오를 처음부터 품고 있었으며, 그것이 이런 식으로 발산되는 것이란 말인가?

이것이 그들의 '본성'이란 말인가?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은 언제나 내게 있어 동경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어떤 현상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군중... 그런 이들의 주장이라면 반드시 귀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나는 오늘 네트의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에게서 공포를 느낀다.

그 군중이 자발적으로 어떤 현상에 대해 맹목적인 광기를 보인다면.

그 군중이 자발적으로 어떤 이들에 대해 맹목적인 증오를 보인다면.

그것이 얼마나 두려울 수 있는지를... 오늘 깨닫는다.



심지어 그들은 스스로를 '정의의 편'이라 생각하며, 이렇게 폭발적인 열정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맙소사.

당신들의 이러한 함성이 황교수에게 힘이 될거라 생각하는가? 정말 당신들은 황교수를 위해 그 살벌한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인가?

PD수첩이 과연 당신들의 이러한 증오를 살만큼 크나큰 죄악이라 생각하는가? 당신들의 증오는 과연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국익이며, 무엇이 민중의 힘인가.

무엇이 네트를 매개하는 민주주의인가.

모든 사람의 손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찌르는 비수만이 주어지는 것이었단 말인가.



우울한 절망의 하루.

이제는 네트를 매개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꿈같은건 꾸지 않으련다.

오히려 이제는 그들의 광기가 '냄비'이기만을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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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ato | 2005/12/06 00: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사건은 참 아쉽고. 두렵고.. 수많은 감정이 교차합니다.
永革 | 2005/12/06 09: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촛불 집회조차 이런 광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하니 답답해지네요.
전간기의 파시스트들은 사회민주주의 내부의 모순을 보고 파시스트로 전향했다고 하는데, 저는 이런 현상들을 보며 민주주의를 혐오했던 플라톤 부류의 생각에 동조되어가는 걸 보니 섬뜩해지기도 하구요.
글강 | 2005/12/06 09: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tanato // 우울한 나날입니다. 뭐 곧 식겠죠.

永革 // 작년 3월의 촛불 집회라면... 조금은 경우가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군요.
다만 요즘들어 제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섬뜩함은 永革님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감히 입밖으로 내어 말하기도 두렵지만 말이지요.
nayuta | 2005/12/06 10: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제가 보기에는 작년 3월의 촛불 집회나 이번 건이나 국민들은 똑같이 반응했다고 봅니다. 왜 그 두가지가 다르다고 생각되는지 모르겠군요.
고어핀드 | 2005/12/06 12: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전 아예 민주주의의 주체가 되는 대중에 대해 기대와 관심을 접어버렸어요 -_-.. 뭐 이제 내 밥그릇만 챙기며 살랍니다.
글강 | 2005/12/06 12: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nayuta // 반응 양상만을 놓고 보자면 분명 비슷하죠. 갈등이 발생하고, 군중이 그 이해 관계자 중 어느 한 쪽의 편에 서는 경우, 보이는 행태는 언제나 비슷비슷한 듯 싶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작년의 3월과 현 사태가 가지는 차이점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군중이 행동하는가', 혹은 '단순히 군중의 분노가 정치적 행동으로 전이되어 버리는가'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오옷 | 2005/12/06 13: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번 사태의 경우는.. '네트의 폭발' 이라고만 차이를 뒀으면 적당할것 같습니다...
작년 3월의 사태는.. '군중의 분노'를 이용하는 '정치적 세력'이 있었기에 그렇게 확대대고 커질수 있었던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은.. '네트의 폭발'만이 모였으며 그것은 '정치적 세력'이 버려야할 것이기에 아니, '정치적 세력'에게 안좋은 일을 주는 '또다른 세력'의 힘에 의해 '네트의 폭발'을 정치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네트의 폭발'만 있고 실질적 힘은 없는것 같습니다.
이미 다들 사과했다고 하지만 '또다른 세력'은 이용할대로 이용해먹고 버릴 사안이었던것이지요.
외국의 유명 과학저널의 태도만 봐도 다 알수 있습니다.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과학성과는 무시할수가 없다'
....
전 어쩔수없는 찌질인가봅니다... ㅡ,.ㅡ;;
오오옷 | 2005/12/06 19: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회변화에 의한 '군중의 이동' 을 '정치적 세력' 이 이용해버릴경우 다가오는 사태를 막기는 힘들것입니다.
반대로, 각개인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네트의 폭발-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사안은 네트의 폭발이 없었더라도 정치적 개입이 있었을때와 없었을때의 차이르 100으로 보았을때, 네트의 폭발이 있었을때와 없었을때의 차이는 20정도 밖에 안됬을것입니다-' 만으로 그친 이번의 사태를 네트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기 힘들것입니다.

제 말은, 네트의 광기와 증오는 어떤 힘이 개입되지 않으면 100프로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것이죠. 20이라도 큰 힘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이 20이 차곡차곡 쌓여서 힘을 발휘한대도 100의 힘에 휘둘릴 뿐이예요.
글강 | 2005/12/06 19: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오옷 // 글쎄요. 그런 컨트롤이 된다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
오오옷 | 2005/12/06 20: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미 미국은 그 컨트롤을 잘 하고 있는것 같은데요... 국가분위기로 보나 ..
접때 오소리송(팥죽송이라고도 하죠)이 잘 퍼진것만 봐도... 우음.
북한풍자송이었답니다..
글강 | 2005/12/06 21:2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오옷 // 아항 그런 의미의 컨트롤이라면야... 원조는 미국이지만 이미 한국에 청출어람이 있습니다.
http://archum20.egloos.com/1998964
http://blog.naver.com/zestor/140020125780
이 두 글을 참조하세요.
엔젠드 | 2005/12/07 01: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이버 공산주의 라. 흥미롭습니다.

히틀러가, "조국" 과 "증오" 그리고 "자부심" 를 이용해 군중을 사로잡고 이끌었습니다.
누구나 조국을 위해 희생한 사람의 얘기를 들을때면 어딘가 찡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손기정 옹 의 일장기, 안중근의사, 일본의 가미가제, 일왕의 존재)
우리는 태어난후로 조국이란 울타리와, 사회, 가족, 나 라는 단위를 배우게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조국 이란 단어에 열광하게 되고, 집단이기주의가 발생하고 나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갑니다.
소수의 의견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갈수밖에 없는 문화적인 면도 있고, 자신의 소속에 대한 자부심때문에 원치 않았던 의견에 동조해 갈때도 많습니다.
자신 스스로의 판단이 흐려지고, 집단적 판단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맞춰갈때 우리는 군중심리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국내만의 문제도 아니고, 전 세계 사람이 갖는 문제 입니다. 물론 문화적 차이로 덜한 나라와 심한 나라가 있지만, 모두 자신의 소속에 대한 감정은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주동자 들인 언론이 가장 큰 문제 입니다.
아올다 | 2005/12/07 17: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은글 읽고 갑니다.

이 번 일을 지켜 보면서... 왜,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인 이유를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새겨보게 됩니다.
글강 | 2005/12/08 01: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엔젠드 // 그 감정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죠. 다만 그 감정에 대한 '맹목'이 증오로 이어지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아올다 //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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