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강, 2005/07/20 18:02, Game]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전쟁'을 소재로 하는 게임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3각 구도'이다. 즉 유저들을 3개의 진영으로 나누어, 상호 견제와 연합을 반복하게끔 설계하는 것이, 진영별 밸런스 유지에 가장 적합하면서도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3각 구도의 전쟁 게임이라... 어떤 좋은 소재가 있을까?
'삼국 시대'가 있다. 북의 대국 고구려, 동방의 로마 백제, 끝끝내 삼한일통을 이루어낸 저력의 신라... 다분히 감정적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소재이지만, 아울러 꽤 훌륭한 소재이지 않은가?
지나가는 생각으로라도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은 누구나 한번쯤은 떠올려 봤을 것이다.
뭐 3각 구도를 포기한다면 꼭 삼국 시대여야 할 필요가 있는가. 전쟁 소재는 많다. 한단고기의 말도 안되는(?) 세계 정복이나, 고려의 대몽 항쟁 역시 좋은 소재이며, 임진왜란도 좋은 소재이다. 혹은 일제 시대의 독립군 투쟁이나 한국 전쟁도? (한국 전쟁은 좀 위험하긴 하겠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소재를 활용한 게임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들이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으며, 요즘은 그나마 이런 전통 소재를 활용한 게임이 매우 드물게 개발된다.
왜? 좋은 소재를 제대로 활용할 능력이 없어서? 개발 능력이 부족한 것인가?
뭐 능력 부족이라고 하자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우리 전통 소재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이 다른 소재에 비해 몇배의 능력을 더 요구한다는 점이다.
실재했던 역사를 소재로 게임을 개발하려면 보다 엄밀하고 세밀한 고증이 요구된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이다 보니, 유저들이 보다 엄밀하게 세세한 배경 설정을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흔히 보는 중세 유럽풍의 판타지에서는 이러한 고증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일단 중세 유럽이라는 것이 '우리의 역사,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고딕 양식의 건물에 모스크를 씌워놓아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을 뿐더러, 풀플레이트를 갖춰입은 중세풍의 마상 기사가 도끼를 든 바이킹에게 돌진한다 하더라도 이를 어색하게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다.
혹시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판타지입니다'라고 해주면 거기서 만사 해결. 간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한다면 이렇게 만만하지 않다. 푸른색 소복에 곱슬 머리를 한 처녀 귀신이 게임에 몬스터로 등장한다면 이걸 곱게 봐주는 유저가 있을까? 오히려 서양에서는 '이게 뭐 어때서...?'라고 할테지만, 국내에서는 난도질을 당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한단고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모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가 '배꼽티'를 입고 있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을 상기할 때, '판타지입니다'라는 변명도 잘 먹히지 않는 듯 싶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이기 때문에 어긋난 점은 그만큼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즉 개발자들은 게임 내에 등장하는 복식, 무기, 편제, 대화 등의 고증에 몇배의 신경을 더 써야만 한다.
'하면 되잖아?'라고 하기엔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며, 자료도 그리 풍부하지 못하다. 오히려 중세 유럽이나 일본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가 더 쉽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각종 사극이나 영화를 통해 우리들은 역사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이와 더불어 몇몇 상징에 대한 각종 편견을 가지게 된다.
앞서 예를 들었던 처녀 귀신을 다시 생각해보자.
창백한 얼굴에 검은색 긴 생머리, 하얀 소복에 흩뿌려진 피.
여기에서 벗어난 처녀 귀신을 생각할 수 있는가?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소복이라는 것은 조선 시대에나 볼 수 있는 복식이다. 고려나 삼국 시대에는 다른 형태의 옷을 입었다. 즉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에서는 전혀 다른 복식을 갖춘 처녀 귀신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저들이 그것을 '처녀 귀신'으로 받아들여 줄까?
아울러 우리가 흔히 '옛 병사'로 인식하고 있는 벙거지에 푸른 옷, 삼지창을 든 포졸을 생각해보자.
저런 모습의 병사는 조선 시대 중후반기에 총기류가 점점 보편화된 이후에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전에는...?
중세 유럽풍의 판타지에서 흔히 보는 '가죽 갑옷', '스터디드 갑옷', '사슬 갑옷', '미늘 갑옷', '판금 갑옷' 등과 같은 것이 우리나라에는 없었을까? 사람 생각이라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인데, 우리 조상들은 그런걸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그럴 리가 있나. 우리 나라에도 다 있었다.
그럼 저런 갑옷을 입힌 캐릭터를 게임에 등장시키면...? 유저들이 친숙하게 여겨줄까?
글쎄. 나는 과연 쉽게 받아들여 질는지 의문이다.
우리 전통 소재로 만든 게임이, 오히려 우리가 가진 전통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100% 완벽한 고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울러 100% 정확한 사실 관계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한다면 그건 차라리 다큐멘터리에 가까워진다.
결국 어느 정도 판타지가 끼어들고, 재해석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연금술의 상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 역사에 '마법'과 같은 주술적 초현실을 어떻게 등장시킬 것인가? 결국 우리 고유의 샤머니즘을 재해석하여 초현실성을 과장되게 부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이런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아무리 과거라 할지라도, 우리의 역사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해 관계와 정서에 직접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이에 반하는 재해석은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광개토 대왕을 '한족의 영토를 침공하여 대학살을 자행한 공포 군주'로 묘사하는 게임이 혹시나 나온다면 어떤 십자 포화를 얻어맞게 될까? 과연 용인될 수 있을까?

바로 옆나라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환마 소굴의 우두머리로 묘사하고 있는 '귀무자' 시리즈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의외로 우리들은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의 역사'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백제가 일본을 점령해서 본토와 식민지 경영을 하는 게임을 만든다면? 감정적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어느 정도 좋은 반응을 얻어낼 수 있을는지 몰라도, 일본 수출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하물며 50여년 전의 한국 전쟁이나, 20여년 전의 정치상 같은 최근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수많은 사례를 통해 어떻게 '개박살'이 나는지를 봐오지 않았는가?
이런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재해석이라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소재를 게임에 적용한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처음부터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고증'에 비하면 차라리 창조 작업이 더 쉽다고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일단 설정에 마음껏 상상을 불어넣을 수 있으며, 사실 관계에 대한 제약도 덜 받을 수 있다. 어눌한 고증을 갖추고 있는 역사 게임은 안만드니만 못한 평가를 받지만, 판타지는 애초에 이런 부담이 없이 시작하게 된다.
당신이 개발자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ps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난 삼국 시대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감정적 민족주의 자극 게임(-_-)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가끔 노트에 끄적여놓은 컨셉들을 보면서 낄낄대고 있는 내 꼬라지를 볼 때... 역시 아직은 초짜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 듯 싶다. 으흐흐흐.
3각 구도의 전쟁 게임이라... 어떤 좋은 소재가 있을까?
'삼국 시대'가 있다. 북의 대국 고구려, 동방의 로마 백제, 끝끝내 삼한일통을 이루어낸 저력의 신라... 다분히 감정적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소재이지만, 아울러 꽤 훌륭한 소재이지 않은가?
지나가는 생각으로라도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은 누구나 한번쯤은 떠올려 봤을 것이다.
뭐 3각 구도를 포기한다면 꼭 삼국 시대여야 할 필요가 있는가. 전쟁 소재는 많다. 한단고기의 말도 안되는(?) 세계 정복이나, 고려의 대몽 항쟁 역시 좋은 소재이며, 임진왜란도 좋은 소재이다. 혹은 일제 시대의 독립군 투쟁이나 한국 전쟁도? (한국 전쟁은 좀 위험하긴 하겠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소재를 활용한 게임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엄밀히 말해 임진왜란을 재해석한 판타지...?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들이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으며, 요즘은 그나마 이런 전통 소재를 활용한 게임이 매우 드물게 개발된다.
왜? 좋은 소재를 제대로 활용할 능력이 없어서? 개발 능력이 부족한 것인가?
뭐 능력 부족이라고 하자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우리 전통 소재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이 다른 소재에 비해 몇배의 능력을 더 요구한다는 점이다.
1. 엄밀한 고증
실재했던 역사를 소재로 게임을 개발하려면 보다 엄밀하고 세밀한 고증이 요구된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이다 보니, 유저들이 보다 엄밀하게 세세한 배경 설정을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흔히 보는 중세 유럽풍의 판타지에서는 이러한 고증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일단 중세 유럽이라는 것이 '우리의 역사,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고딕 양식의 건물에 모스크를 씌워놓아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을 뿐더러, 풀플레이트를 갖춰입은 중세풍의 마상 기사가 도끼를 든 바이킹에게 돌진한다 하더라도 이를 어색하게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다.
혹시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판타지입니다'라고 해주면 거기서 만사 해결. 간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한다면 이렇게 만만하지 않다. 푸른색 소복에 곱슬 머리를 한 처녀 귀신이 게임에 몬스터로 등장한다면 이걸 곱게 봐주는 유저가 있을까? 오히려 서양에서는 '이게 뭐 어때서...?'라고 할테지만, 국내에서는 난도질을 당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한단고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모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가 '배꼽티'를 입고 있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을 상기할 때, '판타지입니다'라는 변명도 잘 먹히지 않는 듯 싶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이기 때문에 어긋난 점은 그만큼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즉 개발자들은 게임 내에 등장하는 복식, 무기, 편제, 대화 등의 고증에 몇배의 신경을 더 써야만 한다.
'하면 되잖아?'라고 하기엔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며, 자료도 그리 풍부하지 못하다. 오히려 중세 유럽이나 일본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가 더 쉽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2. 편견과의 승부
각종 사극이나 영화를 통해 우리들은 역사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이와 더불어 몇몇 상징에 대한 각종 편견을 가지게 된다.
앞서 예를 들었던 처녀 귀신을 다시 생각해보자.
여기에서 벗어난 처녀 귀신을 생각할 수 있는가?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소복이라는 것은 조선 시대에나 볼 수 있는 복식이다. 고려나 삼국 시대에는 다른 형태의 옷을 입었다. 즉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에서는 전혀 다른 복식을 갖춘 처녀 귀신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저들이 그것을 '처녀 귀신'으로 받아들여 줄까?
아울러 우리가 흔히 '옛 병사'로 인식하고 있는 벙거지에 푸른 옷, 삼지창을 든 포졸을 생각해보자.
저런 모습의 병사는 조선 시대 중후반기에 총기류가 점점 보편화된 이후에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전에는...?
중세 유럽풍의 판타지에서 흔히 보는 '가죽 갑옷', '스터디드 갑옷', '사슬 갑옷', '미늘 갑옷', '판금 갑옷' 등과 같은 것이 우리나라에는 없었을까? 사람 생각이라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인데, 우리 조상들은 그런걸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그럴 리가 있나. 우리 나라에도 다 있었다.
![]() 조선 초기의 사슬 갑옷... | ![]() 조선 병사의 모습이라는 것이 믿겨지는가? |
이미지 출처 : [This is Total War] 동양사 게시판
그럼 저런 갑옷을 입힌 캐릭터를 게임에 등장시키면...? 유저들이 친숙하게 여겨줄까?
글쎄. 나는 과연 쉽게 받아들여 질는지 의문이다.
우리 전통 소재로 만든 게임이, 오히려 우리가 가진 전통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3. 재해석의 난점
어차피 100% 완벽한 고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울러 100% 정확한 사실 관계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한다면 그건 차라리 다큐멘터리에 가까워진다.
결국 어느 정도 판타지가 끼어들고, 재해석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연금술의 상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 역사에 '마법'과 같은 주술적 초현실을 어떻게 등장시킬 것인가? 결국 우리 고유의 샤머니즘을 재해석하여 초현실성을 과장되게 부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이런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아무리 과거라 할지라도, 우리의 역사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해 관계와 정서에 직접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이에 반하는 재해석은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광개토 대왕을 '한족의 영토를 침공하여 대학살을 자행한 공포 군주'로 묘사하는 게임이 혹시나 나온다면 어떤 십자 포화를 얻어맞게 될까? 과연 용인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역사적 영웅을 이런 모습으로 그려낸다면...?
바로 옆나라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환마 소굴의 우두머리로 묘사하고 있는 '귀무자' 시리즈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의외로 우리들은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의 역사'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백제가 일본을 점령해서 본토와 식민지 경영을 하는 게임을 만든다면? 감정적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어느 정도 좋은 반응을 얻어낼 수 있을는지 몰라도, 일본 수출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하물며 50여년 전의 한국 전쟁이나, 20여년 전의 정치상 같은 최근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수많은 사례를 통해 어떻게 '개박살'이 나는지를 봐오지 않았는가?
이런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재해석이라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소재를 게임에 적용한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처음부터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고증'에 비하면 차라리 창조 작업이 더 쉽다고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일단 설정에 마음껏 상상을 불어넣을 수 있으며, 사실 관계에 대한 제약도 덜 받을 수 있다. 어눌한 고증을 갖추고 있는 역사 게임은 안만드니만 못한 평가를 받지만, 판타지는 애초에 이런 부담이 없이 시작하게 된다.
당신이 개발자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ps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난 삼국 시대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감정적 민족주의 자극 게임(-_-)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가끔 노트에 끄적여놓은 컨셉들을 보면서 낄낄대고 있는 내 꼬라지를 볼 때... 역시 아직은 초짜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 듯 싶다.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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